일요일
1월 26일
1. 저명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다
가. 니고데모는 누구였으며, 그는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여겨졌는가? 요 3:1, 10.
“니고데모는 유대 나라에서 책임 있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고등 교육을 받았으며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국회의 영예로운 의원이었다. … 그는 부자요 유식하고 명예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초라한 나사렛 사람에게 마음이 끌렸다.” -시대의 소망, 167.
“그는 엄한 바리새인이었고 자기의 선한 행위를 자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성전의 봉사를 받드는 일에 있어서의 그의 자선과 관대함이 높이 평가되었으므로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대의 소망, 171.
나. 니고데모는 어느 시간에 예수님을 만나러 갔는가? 요 3:2[상단].
“감람산의 구주의 휴식 장소를 특별히 물어서 안 다음에 그는 도시가 잠이 들어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예수님을 찾아갔다.” -시대의 소망, 168.
월요일
1월 27일
2. 개인 면담
가. 예수님께서 밤늦게 방문객을 맞이하신 데서 친절을 베푸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시 31:20, 21.
“[니고데모] 그는 예수님과 면담하기를 심히 원하였으나 그를 공공연히 찾는 것을 꺼려하였다. 유대의 관원으로서 아직까지 그다지 알려지지도 않은 일개 교사에게 공명하고 있음을 자인한다는 것은 너무나 굴욕적인 일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찾아간 것을 산헤드린에서 알게 되면 그들의 조롱과 비난을 받게 될 것이었다. 그는 은밀하게 면담하기로 결심하였으며, 만일 자기가 공공연히 찾아간다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모본을 쫓게 될 것이라는 근거 위에 자기가 은밀하게 회견하는 것을 변명하였다.” -시대의 소망, 168.
나. 니고데모가 예수님과 면담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설명하라. 요 3:2.
“니고데모는 그리스도 앞에서 이상한 수줍음을 느꼈으나 그것을 태연함과 위엄의 풍채로 감추려고 힘썼다. 그는 말하였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아니하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교사로서의 드문 재능과 이적을 행하시는 놀라운 능력을 말함으로 그는 면담의 실마리를 찾기를 바랐다. 그는 그 말로 확신을 나타내고 또한 예수가 자기의 말을 신임하도록 계획했던 것이었지만, 사실 그 말은 불신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개 교사로 인정하였다.” -시대의 소망, 168.
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개념으로 니고데모를 갑자기 놀라게 하셨는가? 요 3:3.
“예수님께서는 이 인사의 말을 인정하는 대신에 마치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시는 것처럼 니고데모에게 시선을 고정시키셨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무한하신 지혜로 자기 앞에 서 있는 자가 진리의 탐구자임을 아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방문의 목적을 아시고 듣고 있는 니고데모의 마음속에 이미 자리잡은 확신을 더욱 깊게 하시고자 엄숙하게, 그러면서도 친절하게 단도직입적으로 요점을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
니고데모는 예수님과 더불어 토론을 할 것을 생각하면서 그에게 왔었으나 예수님께서 진리의 기초 원칙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셨다.” -시대의 소망, 168~171.
화요일
1월 28일
3. 거듭남
가. 니고데모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리고 니고데모처럼 우리 모두에게 거듭남의 경험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요 3:4~8.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거듭남에 대한 비유는 니고데모에게도 전혀 낯선 것은 아니었다. 이교에서 이스라엘의 신앙으로 개종한 자들은 흔히 방금 태어난 자녀들로 비유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러나 자기는 이스라엘인으로 태어났으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한 자리는 분명히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니고데모는 자기는 변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구주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놀랐던 것이다. 그는 그 비유의 말을 자기 자신에게 밀접하게 적용하는 것에 화가 났다. 바리새인의 교만이 진리를 탐구하는 자의 정직한 욕망과 싸웠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관원이 된 자기의 지위를 존중하지 않으시고 평소처럼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다. 니고데모는 놀라서 침착성을 잃고 풍자가 가득 섞인 말로 그리스도에게 대답하였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예리한 진리가 양심을 찌를 때에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니고데모도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의 마음속에는 신령한 것에 반응하는 것이 없었는데 이는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논쟁을 논쟁으로 대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엄숙하고도 조용한 위엄을 가지시고 손을 드시면서 더욱 확신을 가지고 진리를 강조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시대의 소망, 171, 172.
나. 언제 그리고 어떻게 개인이 거듭날 수 있는가? 요 1:12, 13.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므로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창조주와의 조화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져야 하고 위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야 한다. 이와 같은 변화는 새로 나는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이 일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각 시대의 대쟁투, 467.
“하나님을 믿는 이 단순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성령께서는 그대들의 마음속에 새 생명을 나게 하신 것이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가족 가운데 한 어린 아이로 출생되었나니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그대들을 사랑하실 것이다.” -정로의 계단, 51, 52.
수요일
1월 29일
4. 정결과 거듭남
가. 새로운 출생과 함께 오는 정결과 거듭남을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막 16:16[상단].
“하나님의 회심시키는 능력은 유전적인 성향과 후천적으로 습득된 성향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는 예수님의 종교는 향상시키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거듭난다’는 말은 변화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 남을 의미한다.” -재림신도의 가정, 206.
“침례는 가장 엄숙하게 세상을 버리는 일이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시작하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세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자들은 사단을 섬기는 일을 버리고 왕의 가족 곧 하늘 왕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그들은,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는 명령에 순종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고후 6:17, 18)는 약속이 성취된다.” -교회증언 6권, 91.
나. 우리 인간 본성의 악과 우리를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무엇이 선언되었는가? 요 3:6; 렘 17:9; 엡 5:26, 27.
“우리는 우리가 빠진 죄의 구렁텅이에서 우리 자신의 힘으로 피해 나올 수는 없다. 우리의 마음은 악한데 우리가 그것을 고칠 수 없다. … 교육과 수양과 의지력(意志力)의 연단과 인간의 노력은 각각 상당한 분한(分限)을 가졌으나 이것들이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에는 무력한 것이다. 이것들이 혹 행위의 외모적 단정을 만들어 낼 수는 있다 할지라도 마음을 고칠 수는 없으며 생애의 동기(動機)를 깨끗케 할 수도 없다.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서 성결하여지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동작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나니 곧 위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야 한다. 이 능력은 곧 그리스도이시다. 오직 그의 은혜만 이 죽은 심령의 기능에 생기를 주어서 그것을 하나님께로 즉 거룩한 데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정로의 계단, 18.
목요일
1월 30일
5. 새 생애와 신선한 행동
가. 사도들은 나중에 거듭남과 함께 오는 초점의 변화에 관해 어떤 기별을 썼는가? 갈 2:20; 요일 2:15~17.
“하나님의 회심시키는 능력은 유전적인 성향과 후천적으로 습득된 성향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는 예수님의 종교는 향상시키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거듭난다’는 말은 변화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 남을 의미한다.” -재림신도의 가정, 206.
“바울은 하늘의 대 주재에 의해 치러진 놀라운 희생을 이해하는 데에 사람들의 마음이 이끌릴 수만 있다면, 사람들의 마음에서 모든 이기심이 사라질 것을 확신했다. 바울은 우선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그분의 아버지 품안에서 차지하셨던 지위에 우리의 마음을 향하게 하고, 그 다음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영광을 내버려두고 스스로 자원하여 모든 것을 굴종시켜 인성을 취하여 종의 의무를 떠맡고서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가장 굴욕적이며 혐오스러운, 그리고 가장 치욕스럽고도 가장 괴로운 죽음-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다고 그리스도를 드러낸다. 인간에게 보여준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현현을 그리스도인이 어찌 사랑의 감응 없이,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라는 인식의 깨달음 없이 명상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주님이 시기와 탐욕과 이기적인 동기로 섬김을 받을 수는 없다.” -교회증언 4권, 458.
“나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하겠다’(요 3:7)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대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마음을 그리스도께 지배당하고 있는 자들은 세상의 과시를 본받고자 하는 욕망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느 곳에나 십자가의 깃발을 가지고 다니며 언제나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욱 높은 목적과 더욱 고상한 주제에 대한 증인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의복, 우리의 주택, 우리의 대화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증거해야 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두 버린 사실을 입증한 자들에게 어떤 능력이 따를 것인가.” -교회증언 5권, 189.
금요일
1월 31일
복습과 생각할 문제 일몰시각 17:54
1. 니고데모는 선행 때문에 자신을 어떻게 보았는가?
2. 니고데모는 그리스도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는가?
3.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4. 거듭남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5. 거듭남의 결과로 어떤 태도 변화가 오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